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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형 약국 가서 약값 아꼈다고요?
절반은 오히려 더 쓴 걸로 드러났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 창고형 약국 갔다가 카트에 약이 가득 담겼던 그 순간
감기약 하나 사러 갔다가 타이레놀 대용량에 비타민C까지 같이 담았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쇼핑카트를 밀면서 진열대를 돌다 보면 "이왕 온 김에" 소화제도, 눈약도 집게 됩니다. 그리고 계산대를 나서며 "오늘 약값 꽤 아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향신문이 7일 입수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믿음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창고형 약국 이용자 중 49.3%가 동네 약국을 이용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출이 늘었다고 답했습니다. 반대로 지출이 줄었다는 응답은 단 4.3%에 그쳤습니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필요할 때 산다'에서 '미리 쟁여둔다'로 소비 행태가 바뀌며 충동·대량 구매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저도 처음엔 "어차피 써야 하는 약, 싸게 많이 사면 이득 아닌가?" 했어요
창고형 약국은 코스트코처럼 대용량을 저렴하게 파는 구조입니다. 품목에 따라 동네 약국보다 20~30% 저렴한 경우도 있습니다. 타이레놀 10정이 500원 싸고, 우루사 120캡슐이 1,000원 저렴한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마트에서 '1+1' 과자를 집어 들 듯 평소라면 안 샀을 약을 카트에 담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야 알게 됩니다. 이걸 언제 다 쓰지? 이게 무슨 약이었지? 얼마나 먹어야 하지? 이 질문들 때문에 결국 다시 동네 약국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숫자로 본 창고형 약국의 진실 — 설문조사 결과 완전 정리
설문 결과에서 지출이 늘었다고 답한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목적한 약 외에 진열된 다른 제품을 함께 구매했다는 것입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 계획보다 많이 사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창고형 약국은 넓은 공간에 수천 가지 제품이 진열되어 있고, 쇼핑카트를 이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담을 공간이 있으니 더 담자'는 행동을 유발하는 구조입니다. 실제 단위 가격은 저렴할 수 있지만 총 구매액은 늘어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약 안전입니다. 설문 응답자 중 약 60%가 창고형 약국에서 구매한 약의 복용 방법을 몰라 동네 약국에 다시 가서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창고형 약국은 셀프 선택 방식으로 운영되어 약사와의 복약 상담이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제까지 10초면 끝나는 구조에서 "이 약 하루에 몇 번 먹어요?", "공복에 먹어도 돼요?"를 묻기 어렵습니다. 의약품은 공산품과 달리 복용법이 틀리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특히 대용량으로 사서 집에 쟁여두면 용법을 잊어버리거나 유통기한이 지나도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논란 속에 지난 4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핵심 내용은 약국 이름에 '창고', '공장' 등의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명칭 규제입니다. '메가팩토리', '메디킹덤' 같은 상호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대한약사회는 "약국 공공성 훼손을 막는 첫걸음"이라며 환호했고, 창고형 약국 측은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알면 더 좋아요
- 창고형 약국에서 현명하게 쇼핑하려면, 방문 전 필요한 약 목록을 미리 작성하고 그것만 구매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써야 할 거'라는 생각에 대용량을 사도, 개봉 후 사용기한 내에 다 쓰지 못하면 실제 절약이 아닙니다.
- 약의 복용법은 의약품 안전나라(nedrug.mfds.go.kr) 또는 약학정보원 앱에서 성분명·제품명으로 검색하면 공식 복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매 후 복용법을 잊었을 때 활용하세요.
- 청소년의 의약품 과다복용(OD) 문제도 주목해야 합니다. 창고형 약국의 셀프 판매 구조가 청소년 접근성을 높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정 내 상비약 보관 장소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청소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보관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 이유
창고형 약국은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에 첫 매장이 생긴 이후 불과 1년 만에 전국 40여 곳으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서울 금천구·동대문구를 비롯해 대전·대구·부산·울산·광주까지 퍼졌고, 소비자들의 방문도 급증했습니다. 약사법 개정으로 명칭 규제는 시작됐지만,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규제는 아직 없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다음번 창고형 약국 방문 때 목록 없이 카트를 끌고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싸게 사러 갔다가 더 쓰는 역설을, 오늘 미리 알아뒀다면 이미 절약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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